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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인 2026년 3월 2주 GQS(어별새 본문) 해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부 작성일 26-03-03

본문


3월 2주|하나님의 시선

본문|마가복음 9:30-37 (3월 4일 본문)

찬송|새212 통347 (겸손히 주를 섬길 때)


핵심 구절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막 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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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 열기

나도 모르게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며 인정받고 싶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어떤 순간에 그런 마음이 가장 강하게 올라옵니까?



2. 본문 이해하기

예수님은 갈릴리를 지나며 두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지만, 제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합니다. 가버나움에서 누가 크냐를 다투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섬기는 자가 첫째라고 가르치시며, 어린 아이를 안으시고 그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3. 말씀으로 나누기

 

①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 (30-32절)

예수님은 두 번째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지만, 제자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고 두려움 때문에 묻지도 못합니다. 나도 하나님의 뜻이 내 기대와 다를 때, 이해하려 하기보다 외면하거나 침묵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은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31절)는 말씀으로 십자가를 향한 확고한 방향을 알리셨습니다.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32절)는 표현은, 제자들이 고난받는 메시아라는 개념 자체를 자신들의 기대와 맞지 않는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구속사 전체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패턴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방식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침묵하거나 외면해 온 우리의 불신앙을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② 누가 더 크냐 (33-35절)

예수님이 길에서 무엇을 논쟁했느냐 물으시자,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를 다투었기에 대답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고 모든 이를 섬겨야 한다고 하십니다. 나는 지금 인정받으려는 마음과 섬기려는 마음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습니까?

“누가 더 크냐”는 논쟁은 제자 공동체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수난 예고 직후에 이 다툼이 일어났다는 것은,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욕망에 훨씬 더 집중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며 섬기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말씀은 세상의 위계 질서를 완전히 뒤집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섬기는 자’는 식탁을 시중드는 종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교와 인정욕 속에 숨어 있는 자신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③ 어린 아이를 영접하라 (36-37절)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품에 안으시며, 내 이름으로 이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님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나는 아무런 유익도 없어 보이는 연약한 사람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귀히 여기고 있습니까?

당시 어린 아이는 사회적으로 지위도 권리도 없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이 아이를 세우시고 안으신 것은, 세상이 무시하는 자를 하나님 나라의 기준으로 높이시는 상징적 행동입니다. ‘내 이름으로’(37절)는 나의 유익이나 편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권위로 그 사람을 대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연약한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선언은, 하나님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은 예배하면서 눈앞의 작고 연약한 지체는 외면하는 모순을 정직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4. 구속사로 해석하기

타락 이후 인간의 역사는 “누가 더 크냐”는 다툼의 역사였습니다. 권력과 인정을 향한 욕망이 세상을 지배해 왔고, 제자들도 그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 욕망의 한가운데서 전혀 다른 길을 걸으셨습니다. 스스로 낮아져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빌 2:7-8), 마침내 십자가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본문에서 수난 예고(30-32절)와 어린 아이 영접(36-37절)이 나란히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낮아지심으로 온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낮아짐으로 이웃을 살리는 구속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며,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5. 말씀으로 기도하기

개인|저도 제자들처럼 누가 크냐를 따지는 마음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인정받으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낮아지심으로 저를 구원하신 주님을 따라 오늘 한 걸음 섬기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공동체|저희 공동체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가장 작고 연약한 지체를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공동체가 되어, 그 섬김이 곧 주님을 영접하는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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